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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의자왕 (백제의 마지막 왕)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by 디렉터 K 2022. 1. 18.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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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궁녀 의자왕~♬

부여-능산리고분군
부여의 능산리고분군

title : 능산리고분군 authr : 한국저작권위원회by site : 공유마당 저작권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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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역사적 중요도 명성 매력 특기
★★☆ ★★★ ★★★ 정벌, 음주가무

 

연대

595년 ~ 660년 11월

 

업적

백제의 마지막 왕

 

스토리

재위기간초에 개혁정치, 국정쇄신을 통해 고구려와 연합하여 신라를 공격하고 영토를 확장하였으나 말넌에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당하여 명말하게된 백제의 마지막 왕이 되었다.

 

백제의 제31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백제의 제30대 임금 무왕의 장자로 신라 선덕여왕의 조카이자 태종 무열왕의 이종사촌이다.

 

632년(무왕 33년) 태자로 책봉되었으며 641년 무왕이 죽은 후 즉위하였다.


재위 중반기까지만 해도 숙적인 신라를 몰아붙이며, 무왕의 뒤를 이어 백제의 마지막 중흥기를 이끌었으나 재위 15년(655년)에 접어들어서 백제의 멸망에 관한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라를 공격하기 직전에 붉은 말이 북악의 오함사로 들어가 울면서 불당을 돌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있다. 또한, 주색을 탐하는 암군으로 전락하여 백제를 망하게 했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백제라는 나라를 시기한 타국들에 의해서 의자왕의 업적이 곡해된 것으로 보는 역사학자들도 있다.

660년 8월 2일 나당연합군 측과 굴욕적인 항복식을 당한 의장완은 이후 태자, 왕자 및 대신 그리고 백성들이 소방정에 의해 당나라로 끌려가게되었고 얼마지나지않아 병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기타

흔히 의자왕 하면 '삼천 궁녀'를 떠올리지만, 삼천 궁녀는 진짜 정확히 궁녀 3천 명이 아니라 궁녀를 많이 거느렸다는 문학적인 수사에 불과하다.

삼천 궁녀가 처음으로 언급된것도  것도 조선 초기에 와서이다. 《삼국사기》에는 낙화암에 대해 언급이 없고 《삼국유사》에서도 단지 일연이 잘못된 이야기라고 언급할 뿐이다.

 

의견

삼천궁녀와 함께 낙화암에서 뛰어내려 죽었다는 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닌듯하다.

 - 낙화암은 충남 부여에 있으나 실제 중국에서 죽었다는 설이 있음.

 - 3천명의 궁녀와 함께 죽은것이 아니라 그정도로 많이 몸을 던졌다는 설이 있음.

게다가 의자왕은 의로울 義에 자애 慈를 후세 사람들이 지어주었고 해동증자라 불렸던 인물인데 방한한 삶을 살았을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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