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의 계백~♬
title : 1971년_부여 계백장군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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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중요도 | 명성 | 매력 | 특기 |
★★☆ | ★★★ | ★★★ | 전투 |
미상 ~ 660년 8월 20일
황산벌 전투에서 마지막까지 결사항전했던 백제의 충신
황산벌에서 마지막 까지 결사항전했던 백제의 장군이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육지와 바다를 통하여 동시에 공격해오자 백제 황산벌에서 마지막 결사 항전을 준비한다. 나당연합군은 치밀하계 계획했고 신라도 처음에는 고구려를 침고하는것 처럼 북쪽으로 올라가다 바다를 건너 도착하는 당나라 연합군에 맞춰 백제로 침고하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백제는 계백장군을 황산벌로 급파하여 죽음을 각오한 5천 명의 결사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북동쪽에서 내려오는 신라군을 막으러 출격하였다.
계백은 이미 전세는 기울어졌고 더이상 나라를 지킬 수 없음을 직감하고는 "살아서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쾌히 죽는게 낫다"라고 하며 출진하기 전에 처자식을 모두 자신의 손으로 베어 죽였다.
죽을 각오로 항전했던 계백은 황산벌에서 4번싸워 모두 이기는 기적을 만들었으나 기적은 여기까지였다.
백제군이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승리하자 신라군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고 장군 김품일이 16세의 어린 아들 관창을 적의 진영으로 돌격하게 했다. 관창은 백제군에게 사로잡혔고 계백은 어린 나이로 출전한 관창을 불쌍히여겨 살려보낸다. 그러나 관창은 다시 출전하여 붙잡혔는데 계백은 이번에는 살려둘 수가 없어 관창의 목을 잘라 말 안장에 묶어 신라군 진영으로 돌려보냈다. 그러자 신라군은 어린 관창의 용맹한 죽음에 분노가 이글거리게 되었고 그 분노가 신라군의 사기를 올려 총공격을 감행했고 그 기세를 막지 못하고 백제군은 결구 패배하게 되었다.
황산벌 전투에서 계백 장군과 5천명의 결사대는 거의 전멸하였으며 계백 역시 마지막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다만 계백과 함께 전투를 지휘하였던 20여의 지휘관들은 살아서 포로로 붙잡혀 신라에 항복했다. 계백이 황산벌 전투에서 죽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이 당나라군과 신라군의 협공을 받아 함락되었고 백제의 마지막 왕이었던 의자왕이 부하인 예식진의 배반으로 인해 사로잡히면서 백제는 멸망하게 되었다.
백제를 위해 마지막까지 항전 했던 수장 중의 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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