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서싸운 관창~♬
역사는 흐른다~~~♬
title : 경주 화랑의 집 현판 제막식
authr : 한국정책방송원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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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중요도 | 명성 | 매력 | 특기 |
★☆ | ★☆ | ★★★ | 폐기 |
645년 ~ 660년
신라의 화랑
관창은 신라의 화랑으로 금관국 왕족 출신의 진골 김품일의 아들이다.
황산벌 전투에서 죽음으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삼국통일의 근간이 된 황산벌전투를 통해 화랑의 기세를 드높인 인물이다.
관창은 아버지 김품일과 함께 660년 황산벌 전투에 참전했다. 신라의 김유신이 이끄는 대군을 맞아 4번이나 신라군을 패배로 몰아넣었던 백제의 계백과 5천 결사대로 인해 사기가 바닥치고 있었다. 신라군 사령부는 화랑을 돌격시켜 군사들의 전의를 끌어올리는 작전을 선택한다. 우선 김흠순의 아들 반굴이 용감히 싸운 끝에 전사했고 다음으로 김품일은 아들 관창이 출전하게 되는데 당시 그의 나이가 16살밖에 안된 소년이었다.
관창은 창을 들고 백제군을 향해 진격하였지만 사로잡혔고 계백은 관창이 어린 소년임을 확인하고 살려서 돌려보낸다. 돌아갔던 관창이 다시 칼을들고 진격해 오니 더이상 계백도 살려둘수 없어 관창이 죽이고 머리를 타고 온 말에 묶어 돌려보내게된다.
목만 돌아온 어린 화랑의 시체를 본 신라의 군사들은 분노에 이글거렸고 복수의 다짐으로 총공격을 감행하여 마지막 5번째 교전에서 승리하면서 황산벌 전투가 마무리되었고 곧 백제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수도인 사비성이 함락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관창이 속했있던 화랑은 신라의 청소년 수련 시스템 중 하나이며 주 목적은 심신 수련이라고 하는데 사실 관리, 군인 양성을 위한 시스템이었다.
화랑은 내면의 수련 뿐 아니라 외모를 가꾸는것 역시 중요하게 여겼기에 일반적으로 후대에서 화랑을 묘사 할 때는 꽃미남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전투로 관창이라는 인물이 역사의 위인 반열에 오르긴했지만 이 어린 소년을 전쟁의 재물로 받쳐진것이 씁쓸하다.
관창의 아버지는 전쟁에 승리는 하였지만 평생 죽을때까지 괴로워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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