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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김부식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by 디렉터 K 2022. 3. 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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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

김부식 초상화(작자 미상)

별점

역사적 중요도 명성 매력 특기
★★★ ★★★ ★★★ 정치, 역사, 편찬

 

연대

1075년 ~ 1151년

 

업적

삼국사기 집필

 

스토리

고려의 문신. 개경파 문벌귀족. 삼국사기의 저자로 유명하며 묘청의 난을 진압한 이후 고려 조정을 좌지우지한 한국사의 대표적 권신이다.

 

김부식의 집안은 아버지 대까지만 하더라도 중앙 귀족에 못 미치는 수준의 집안이었다. 그러다가 김부식 대에 입신양명에 성공하여 가문이 크게 흥해 고려에서도 손꼽히는 문벌귀족으로 되었던 것. 김부식의 조부와 부친은 높은 직위에 있지는 않았는데 김부식의 5형제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출세하면서 가문의 위세가 급상승하게 된다. 


김부식의 형 김부일(金富佾)이 인종과 척준경을 연결하는 과정에서 참가하여 이자겸이 몰락한 이후에 급성장하게 되는데 척준경을 제거하면서 정권을 장악한 정지상 등의 서경파에 대항하여 기존의 문벌귀족을 대표하는 개경파 귀족으로서 김부식 일족이 급부상하게 된다.

서경파를 중심으로 하는 서경 천도 운동이 결국 개경파의 반대로 실패로 돌아가자 서경파 중에서 강경파였던 묘청이 조광, 유참 등과 함께 서경을 기반으로 대위국을 선포하고 반란을 일으키게 되는데 묘청의 난이다. 

이 때 김부식은 60대의 나이로 조정에서 관직이 오를만큼 올랐던 위치에 있었기에 개경파의 대표로서 묘청의 난을 제압하는 총대장에 임명된다. 김부식은 일단 개경에 있던 온건 서경파인 정지상, 백수한, 김안 등을 처단한 후 1년 2개월에 걸친 내란 끝에 반란을 제압했다.

묘청의 난 진압 공로로 의종 즉위 후 김부식은 낙랑국 개국후(樂浪國 開國侯)로 봉해졌다.

은퇴할 때가 된 김부식이 인종의 권유로 없어진 역사를 복원하라는 명을 받고 만든 것이 《삼국사기》다. 김부식은 총제작자 겸 감독일 뿐 김부식이 독단으로 삼국사기를 쓴 것은 아니다. 다만 김부식의 입지를 고려하면 내용에 김부식과 그 세력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삼국사기 편찬에 참여한 이는 최산보, 이온문, 허홍재, 서황정, 박동계, 이황중, 최우보, 김영은, 김충효, 정습명으로 김부식까지 모두 11명인데 김부식과 가까운 이들이었으며 주로 자료 수집과 정리를 담당했다. 편찬의 기준은 모두 김부식에 의해서 결정되었으며 김부식이 더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론만 보아도 김부식의 의도는 국왕의 집필 방침과 함께 양대 축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기타

은퇴할 때가 된 김부식이 인종의 권유로 없어진 역사를 복원하라는 명을 받고 만든 것이 《삼국사기》다. 김부식은 총제작자 겸 감독일 뿐 김부식이 독단으로 삼국사기를 쓴 것은 아니다. 다만 김부식의 입지를 고려하면 내용에 김부식과 그 세력의 영향이 강하게 반영되었다는 것도 부정하기 어렵다. 삼국사기 편찬에 참여한 이는 최산보, 이온문, 허홍재, 서황정, 박동계, 이황중, 최우보, 김영은, 김충효, 정습명으로 김부식까지 모두 11명인데 김부식과 가까운 이들이었으며 주로 자료 수집과 정리를 담당했다. 편찬의 기준은 모두 김부식에 의해서 결정되었으며 김부식이 더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론만 보아도 김부식의 의도는 국왕의 집필 방침과 함께 양대 축으로 작용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의견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반도 역사서《삼국사기》 집필로 한국 고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유산을 후대에 남긴 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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