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정치 정중부~♬
무단정치(武斷政治) : 무력을 앞세워 행하는 강압적인 정치
역사적 중요도 | 명성 | 매력 | 특기 |
★☆ | ★☆ | ★☆ | 쿠데타 |
1106년 ~ 1179년
무신정변을 통한 무신정권의 시작
고려 중기 무신 겸 정치가로 무신정변을 주도하여 무신정권 시대를 연 인물이다.
우선 정중부의 난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문신들에게 무시당하던 무신들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일으킨 반란'이다.
12세기 고려는 왕권이 약해지고 문신들이 권력을 차지하고 떵떵거리던 세상이었다. 제도적으로 무신이 오를 수 있는 최고 지위는 정 3품인 상장군이었고 2품 이상의 재상직은 문신들이 독차지했다. 심지어 전쟁이 났을 때 군대의 최고 지휘권도 모두 문신에게 있었고 거란을 물리친 서희와 강감찬, 여진족을 정벌한 윤관도 문신 출신이었다.
무신들은 나라를 지키고, 왕을 호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도 늘 문신들로부터 업신여김 받았었고 같은 지위여도 문신에 비해 급여도 적었을 뿐만 아니라 문신들이 군인들의 월급을 가로채기도 했었다. 이때 무신들이 얼마나 업신여김 받았는지 보여 주는 하나의 사건이 벌어졌다.
1144년 12월 마지막 날, 궁궐에서는 귀신을 쫒는 행사가 열렸었고 왕을 비롯한 많은 신하들이 행사에 참여했다. 한참 행사가 진행되고 있을 때였어요. 그때 젊은 문신인 김돈중이 장교였던 무신 정중부를 웃음거리로 만든 사건이 벌어졌는데 김돈중이 정중부의 수염에 촛불을 가져다 대었고 눈 깜짝할 사이 정중부의 수염에 불이 붙어 홀라당 타고 말았다.
몹시 화가 난 정중부는 크게 꾸짖으며 주먹질을 했고 이를 알게 된 김돈중의 아버지 김부식은 정중부를 매질해달라고 인종에게 요청했고 왕은 어쩔 수 없이 그 뜻을 받아들였지만, 평소 정중부의 됨됨이를 남달리 여긴 인종은 몰래 그를 피신시킨 후 왕은 얼마 후 다시 불러 곁에 두고 자신을 호위하도록 했는데 이 일이 있은 후 정중부는 문신들에 대한 감정골은 깊어졌만 갔다.
인종이 죽고 의종이 왕이되었으나 무신들의 지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느 날 의종은 보현원으로 놀러 가는데 중 오문에서 갑자기 멈추고 훈련하기 좋은 날씨라며 일종의 씨름인 수박 대회를 열자고 했다. 이를 통해 무신들끼리 즐기게 하고 상을 나눠주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이때 결정적인 계기가 일어난다. 이때에 나이 든 대장군 이소응이 수박 경기에 참여했다가 지쳐서 빠져나왔는데, 한뢰가 튀어나와 이소응을 조롱하며 그 뺨을 때린 사건이 일어난다. 이때에 왕과 문신들은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었으며 이소응을 모욕했다.
이소응이 뺨을 맞은 자리에서 이고는 칼을 뽑고 정중부에게 눈치를 줬지만, 정중부는 잠자코 기다리라고 했으며 날이 저물 때쯤 왕의 일행이 보현원에 접근하였을 때 이고와 이의방은 먼저 가서 왕의 명령이라 속이고 순검군을 소집시켰다. 그리고는 왕이 문으로 들어가고 문신들만 나오자 무신들은 그 자리에서 문신 임종식과 이복기를 살해하고 들어갔다. 한뢰는 왕이 앉는 어상 밑에 숨기도 하고 왕의 옷자락을 붙들고 늘어졌지만, 처음에는 왕 앞에서 자제하던 이고가 칼을 빼들자 나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무신들은 개성에 들어가서 사졸들을 풀어 문신 수십여 명을 대대적으로 학살했다. 이 과정에서 정중부 일파는 원래 자신들의 원수는 문신 몇 명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훨씬 많은 문신과 찬동하지 않는 무신들까지도 죄다 죽였다. 심지어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들의 집까지도 허물 정도였으니 얼마나 분노가 극에 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성에 있던 김부식의 아들인 김돈중은 도주했지만 이후 시종의 밀고로 인해 자신의 동생과 함께 같이 잡혀 죽은 것으로 볼 때 인망이 없긴 없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의종은 정중부에게 그만하라고 만류했지만, 정중부는 건성으로 대답할 뿐 일을 계속 진행했다. 이후 살아남은 문신들을 모두 모았을 때이고가 문신들을 모두 죽여버리자고 하기도 했지만 정중부가 이를 만류한 적도 있다.
이 사건이 '보현원의 난', '무신의 난', '정중부의 난' 등으로 칭하기도 하는 무신정변이며 고려 시대의 역사를 전후기로 크게 가르는 무신정권의 시작이 바로 이 사건이다. 정중부의 입장에서는 수십 년 묵은 원한을 이때 풀게 된 것으로 이때 정중부의 나이는 60대 중반이었다.
이후 1178년 정중부는 사직을 하며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권력을 이어받은 정균과 송유인은 서로 권력다툼을 하며 부정부패를 일삼다가 결국엔 무인 세력들의 불만을 사게 된다.
그리고 정균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무려 임금의 자제인 공주를 자신의 둘째 아내로 삼으려 했고, 정중부가 문하시중으로서 관직에 있을 동안은 오랫동안 눌려있었지만 정중부가 물러나자 정 2품의 문하시랑 평장사에 오르게 된 송유인은 당시 조정의 영수였던 한문준과 문극겸을 탄핵하는 등의 행동으로 대신들의 큰 반감을 사게 된다. 무엇보다 정중부와 문신들과의 중계를 담당하던 송유인이 문신들의 대표 격인 문극겸, 한문준과 틈이 벌어지면서 문신들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것이 치명타였다.
이때 보면 장인인 정중부로부터 송유인이 정균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권세를 물려받았음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정균이 공주를 아내로 삼으려는 것은 매부에게 밀리고 있기에 매부를 누를 수 있을 보다 확고한 권력을 취하려는 술수였던 듯하다. 혹은 이때 정균이 모든 권력을 송유인에게 밀려서 잃었다는 견해도 있지만 궁녀들을 가지고 놀고, 공주까지 노골적으로 요구할 정도의 권세를 지녔던 것을 보면 아닌 듯싶다. 적어도 명종을 우습게 여기며 누를 정도의 권력은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1179년 9월에 공주를 아내로 삼으려는 정균의 행태에 분노한 26살의 청년 장군 경대승이 결사대를 꾸려 기습하였고, 아들과 사위와 함께 사이좋게 목숨을 잃으면서 정중부의 가문은 한순간에 몰락하게 된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사람을 무는 법. 그리고 현명해야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
근데 과연 정중부가 위인인가??
#21~27 죽림칠현 (0) | 2022.03.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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