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대사 해골물~♬
미상Unknown author,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역사적 중요도 | 명성 | 매력 | 특기 |
★★★ | ★★★☆ | ★★★ | 종교, 신념 |
617년 ~ 686년 4월 28일
불교계 전체 역사를 통틀어 손꼽을 만한 사상가로 대성화쟁국사(大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삼국유사에 기록에 따르면 신라 최초의 절 흥륜사에 모셔졌던 신라 10대 불교 성인 중 한명으로 추대되었다.
그의 어머니가 원효를 임신했을때 유성이 품속으로 드는 태몽을 꾸었고 만삭이 된 몸으로 집근처 밤나무 아래를 지나다 산통이 와서 출산을 했는데 그때 오색구름이 땅을 덮었다고 전해진다.
원효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기억력이 뛰어으며 일찍이 고향에서 한학을 배우다가 유교를 가르치는 태학에 입학하였다. 또한 그는 어려서부터 화랑으로 활동하였다.
어린나이에 어머니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후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하다 출가를 결심하였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반대에에도 불구하고 승려가 되었다.
원효는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승려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특히 유식학(唯識學)이나 불교논리학 등에 있어서 그의 영향력은 매우 크다고 한다.
원효는 불교를 대중화시키고 분열된 국민정신을 통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고구려, 신라, 백제에서 당대 가장 고승이었던 원효대사가 신라에서 살았고 고구려, 백제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했다. 삼국통일에는 당나라가 큰 역할을 하였는데, 원효는 당시 많이들 읽는 모든 불경에 대해 각각 해설서를 편찬할 정도로 불교에 자유자재했고 통달해 당시 당나라 고승들이 원효대사를 매우 존경하였고 당시 동북아 국가들의 왕은 최고의 고승을 국사, 왕사로 두어 각종 정책결정에 권고를 받았었다. 오늘날, 의상이 당나라로부터 수입해 한국화 한 화엄사상과 더불어 원효의 화쟁사상과 일심사상은 삼국통일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했다 평가 받는다.
또한 원효는 수많은 저서를 남겼는데 100여 종의 240여 권의 저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현존하는 것은 20부 22권이라고 한다. 대표 저서로는 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십문화쟁론 등이 있다고 한다.
의천의 해골물 이야기는 당나라의 유학길에오른 원효는 하루는 동굴에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 갈증을 느껴 주변을 더듬다 바가지에 든 물을 마셨는데 다음 날 일어나서 보니 그것은 해골에 든 물이었고, 원효는 심한 구역질을 했다고 한다. 이때 의천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의 이치를 깨닫게 되는데 마음먹기에 따라 지난 밤에 마신 물이 시원한 물이 되기도 하고 해골에 담겨 먹을 수 없는 역한 물이 되기도 한다는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리고 ‘송고승전’의 ‘의상전’에는 또다른 에피소드가 전해지는데 원효와 의상은 해가 져 갑자기 노숙해야 하는 상황에서 동굴에 묵게 되었고 편안히 잠을 잤다. 그런데 다음 날 일어나 보니, 그곳은 동굴이 아니라 인골이 흐트러져 있는 무덤이었던것이다. 이런 상황을 인지한 후 하루 거기서 잠을자게 되었는데 그날은 밤에는 악몽에 시달려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다고 한다.
두 이야기는 조금 다르지만 결국 마음먹기에따라 같은 현상도 다르게 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던건 마찬가지다.
의천대사와 더불어 불교계의 대표적인 위인중 한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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